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히카루의 바둑 (문단 편집) === 일본의 프로기사 === 본작의 [[일본기원]]과 [[관서기원]]에 소속된 프로기사들. * '''[[토우야 코우요우]] / 조남운''' 토우야 아키라의 아버지이자, 작중 일본 바둑계 1인자. * '''[[오가타 세이지]] / 오진혁''' 토우야 명인의 제자이자, 토우야 아키라의 사형. 작중 일본 바둑계 정상급 기사. * '''[[쿠라타 아츠시]] / 구창호''' 신도우 히카루를 눈여겨보고 있는 선배 바둑 기사. * '''쿠와바라 혼인보(桑原仁)[* 仁의 읽는 법은 작중에서 나오지 않아 불명.] / 이봉수''' {{{-1 - 성우: [[파일:일본 국기.svg|width=20]] [[나야 로쿠로]]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0]] [[이윤선]](KBS), [[김태훈(성우)|김태훈]](투니버스)}}} [[파일:1f8d000551e53fe1afc6.jpg|width=300]] 프로 九단. [[캇파]]를 연상시키는 듯한 독특한 [[헤어 스타일]]이 특징인 노인으로 작중 일본기원 소속 현역 최고령 기사. 작중 일본 바둑계 정상급 기사로 [[혼인보전]] 타이틀을 장기간 방어 중이다.[* 영세 혼인보 칭호(5연패 이상)를 쓸 수 있는 자격을 획득했는지는 불명. 작중에서 정확하게 언급되지 않았다. 히카루가 중학교 1학년 때 이미 혼인보였고 연재종료까지 유지하였으니 최소 3기는 연속으로 보유 중이다.] 작중 중반에 오가타를 상대로 방어전을 벌여 4:3으로 승리했으며, 다음 해에는 쿠라타까지 꺾고 최소 3연패에 성공했다. 작품 막바지엔 다시금 오가타가 도전자로 올라와 대국하게 되었지만, 결과가 어찌되었는지는 나오지 않았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노익장]]을 발휘해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다'라는 평을 듣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실력이 뛰어난 데다 연륜에서 나오는 심리전에도 능숙하다. 오가타의 도전을 꺾어버린 혼인보전 제7국이 대표적인데, 쿠와바라는 1~6국까지 오가타가 봉수를 하게 놔둔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제7국에서 계시원이 조심스레 재촉할 때까지 시간을 질질 끌다가 막판에 한 수를 내어 오가타에게 처음으로 봉수를 시켰다. 그리고 오가타가 1승만 더 하면 혼인보 타이틀을 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심리적 압박에 시달린다는 점을 찔러보기 위해 1일 차 일정이 끝나고 밥 먹으러 가는 도중 오가타에게 "혹시 봉수에 잘못 표기하지 않았냐"라는 농담을 던져 불안감을 일으켰다. 봉수까지 하는 이틀 일정의 타이틀전이 처음인 오가타는 여기에 낚여 다음 날 대국에서 제대로 집중을 못해서 패했고, 이후 쿠와바라를 만나면 존댓말 이상의 예의는 절대 갖추지 않고 면전에서 허튼소리를 한다고 쏘아붙인다든지 대놓고 노려본다든지 하는 식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후반부에서 혼인보전 타이틀 도전권을 다시 따낸 오가타에게 쿠와바라 혼인보가 "자네가 상대라면 또 날 즐겁게 해주겠지? 재작년 봉수 때 당황하던 자네 모습은 유쾌하기 짝이 없었어."라고 도발하자 "목이나 잘 씻고 기다리시지. 영감."이라고 살벌하게 응수했을 정도. 실력을 떠나서 [[직감]] 하나만큼은 작중 최고 수준인데, 원생 시절의 히카루를 슬쩍 마주친 것만으로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고 성장에 주목하고 있었다. 정황상 [[후지와라노 사이|사이]]의 존재를 감지한 듯(...). 히카루가 토우야 명인과 신초단 시리즈에서 격돌하게 되자, 아무렇지도 않게 히카루의 승리에 돈을 걸 정도로 뭔가를 느끼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히카루가 엉망으로 두다가 참패한 듯 보이는 형국인데도 "일부러 핸디를 안고 뒀다고 하면 말이 된다."라며 내막을 가볍게 간파했다. 오죽하면 또 같은 상황이 되면 히카루에게 다시 걸겠다고까지 했다. 후일 히카루가 오랜 결석 끝에 아키라의 대국장에 나타나자 야단치는 관계자를 가로막으면서 "네 라이벌은 위층에 있다."라고 히카루를 보내 줬는데, 당시 히카루가 아키라를 찾아 바둑 기사로서의 결의를 다지려 했다는 점을 그냥 직감으로 파악한 듯하다(...). 이쯤 되면 예언자라 불러도 될 레벨. 히카루나 아키라와 대국하는 장면은 없고, 2부 북두배 초반부 시점에 열린 신초단 시리즈에서 [[이스미 신이치로]]와 대국해 6집 반으로 패했다. 대국 전 프로 세계의 매운맛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 이스미와 사진을 찍으면서 골프 칠 때 [[캐디]]를 서 달라는 등의 농담을 활용한 심리전을 썼는데, 중국에서 멘탈 특훈을 한 이스미에겐 통하지 않았다. 덕분에 이스미의 이름을 기억해 놓겠다며 칭찬을 해줬다. 캐릭터의 모티브는 제23세 혼인보 [[사카타 에이오]] 九단. 특히 그의 노년 시절에서 많은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보이는데, [[캇파]] 헤어스타일이 그냥 판박이다. 이외에 자신이 보유한 타이틀 외의 다른 기전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은 명예기성 [[후지사와 슈코]] 九단, 이스미에게 갑자기 골프 드립을 친 부분은 제25세 혼인보 [[조치훈]] 九단을 연상시킨다. 또한 이름인 쿠와바라는 혼인보 슈사쿠의 본명인 '쿠와바라 토라지로'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쉽게말해 일본기원 소속 레전드급 프로기사들의 이런저런 면모를 [[오마주]]한 재미있는 캐릭터. KBS 더빙판에서는 '이봉수'로 로컬라이징 되었다. [[서봉수]] 九단에게서 따온 이름. * '''자마'''(座間) {{{-1 - 성우: [[파일:일본 국기.svg|width=20]] 이시즈미 카즈히코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0]] [[온영삼]](투니버스)}}} [[파일:Capture.PNG.png|width=200]] 프로 九단. 왕좌 타이틀 보유자. [[토우야 아키라]]의 신초단 시리즈 상대로 첫 등장했는데, 처음에는 주목받는 신인 기사 체면을 살려줄 생각으로 적당히 져주려고 했지만, 자기 앞에서 전혀 기죽지 않는 아키라를 보고 기고만장하고 있다고 여겨, 생각을 바꿔서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상대했다. 초반에는 아키라의 맹공에 몰려 리드를 허용했지만, 중반에 아키라의 허를 찌르는 묘수를 둬서 순식간에 형세를 알 수 없는 상태로 만들었고, 끝내기에서 기어이 역전해 승리했다. 신초단 시리즈의 규칙 상 자마가 아키라에게 5집 반의 덤을 주고 시작해야 했는데도 승리한 것.[* 신초단 시리즈는 선배 기사가 신초단에게 5집 반의 덤을 주고 시작한다.] 아키라가 당시 압도적인 실력으로 프로가 되었긴 하지만, 정상급 기사와는 어마어마한 기량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캐릭터이다.[* 사실 역으로 덤을 받은 아키라가 실리를 적극적으로 챙기는 수비형 바둑을 뒀다면 자마가 이기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대국을 보고 있는 [[신도우 히카루]]에게 "프로의 세계로 빨리 올라와! 내 실력이 바로 이 정도다!"라고 어필하고 싶었던 아키라가 무리해서 계속 공격적으로 뒀고, 이걸 간파한 자마가 받아주지 않고 역으로 틈을 찔러서 이겼다. 쉽게 말해 아키라가 무리하게 KO승을 노리다 당해버린 것.][* 다만 신초단 시리즈는 타이틀전이 아니라 정상급 선배 기사가 프로 시험에 합격한 신인 기사를 격려해 줄 목적으로 열리는 이벤트라 선배 기사 측이 적당히 져주는 것이 관례인데,[* 물론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러는 선배 기사들도 있다' 정도일 뿐. 1부 후반에 신초단 시리즈에서 [[이스미 신이치로]]와 대국한 쿠와바라 혼인보만 해도 특기인 트래시 토크와 심리전을 걸어 자신이 이기려고 했다.] 자기 앞에서 기죽지 않는 아키라를 대견하게 여기기는커녕 기고만장하고 있다고 여기고, 따끔한 맛을 보여주겠다며 처음부터 필사적으로 둬서 기어이 승리한 걸 보면 실력과 별개로 인품은 상당히 쪼잔한 것으로 보인다.] 왕좌 타이틀전에서는 도전자로 올라온 토우야 명인을 상대로 방어전을 치렀다. "아드님의 원수를 갚으러 오셨습니까" 드립을 농으로 쳤는데 정말로 토우야 명인에게 져버리는 바람에 왕좌 타이틀을 뺏기고 토우야 명인은 5관왕에 등극했다. 이후 아키라가 三단이 되었을 때 다시 대국 상대로 등장. 이번에는 신초단 시리즈 때의 거만함을 버리고 진지하게 아키라를 대했고, 아키라는 이번에도 자마에게 패했다. 아키라 또한 "전 왕좌 타이틀 보유자는 그렇게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라고 평가했을 정도. 토우야 코우요우의 은퇴로 왕좌 타이틀 자리가 공석이 된 뒤로 다시 왕좌 타이틀 복귀에 성공했다는 언급이 나왔다. 형세가 불리해지면 위의 그림처럼 부채 끝을 깨무는 버릇이 있다. * '''이치류'''(一柳) {{{-1 - 성우: [[파일:일본 국기.svg|width=20]] [[쿠스미 나오미]]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0]] [[권혁수(성우)|권혁수]](투니버스)}}} [[파일:히카루의 바둑_이치류.jpg|width=300]] 대머리의 인상 좋아보이는 중년으로, 기성(棋聖) 타이틀 보유자이다.[* 현실에서 일본 7대 기전 타이틀 서열은 기성(棋聖), 명인, 혼인보, 왕좌, 천원, 기성(碁聖), 십단 순이지만 작중에서는 명인전 우승 상금(3800만 엔)이 기성(棋聖)전 우승 상금(3300만 엔)보다 많기 때문에 명인의 서열이 더 위다. 참고로 서열이 앞선 타이틀을 보유했다고 해서 무조건 실력까지 앞서는 건 아니다.] 타이틀 홀더이므로 정상급 기사인 건 분명하지만 취급이 영 좋지 않은데 승패가 나온 대국에서는 모두 패배했다. 인터넷 바둑을 즐기다가 한 상대를 만났는데 그게 바로 토우야 명인이라 패배. 이건 웃으면서 넘어간거라 그렇다 쳐도 이후 2부에서는 토우야 아키라를 상대로도 접전을 벌이다 아키라의 묘수에 급격히 동요해서, 패배하고 말았다.[* 항상 여유로운 모습이던 그가 대국에서 패한 후 거친 발걸음으로 대국장을 뛰쳐나갔을 정도.] 그리고 이후 슬럼프에 빠진 듯 계속 성적이 좋지 못하다는 언급이 있다. 토우야 명인의 은퇴로 공석이 된 명인 타이틀 결정전에서도 하타나카라는 젊은 기사에게 패배했고, 본인이 보유하고 있었던 기성 타이틀 방어에도 실패했다는 언급이 나왔는데 누구에게 타이틀을 빼앗긴 것인지는 작중에서 명확하게 언급되지 않았다.[* 작중 이름만 언급된 인물인 관서기원의 이시바시 九단으로 추정된다. 이시바시가 기성전 도전 4국을 둔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바로 뒤 입단자 면장 수여식에서 카도와키 신초단이 "이치류 선생이 기성 방어에 실패했다" 라고 말했다.] * '''모리시타 시게오'''(森下茂男) {{{-1 - 성우: [[파일:일본 국기.svg|width=20]] [[키타가와 카츠히로]]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0]] [[손종환]](투니버스)}}} [[파일:Shigeo_morishita_52729.jpg|width=200]] 프로 九단. [[와야 요시타카]], 시라카와 미치오, 사에키 코지의 스승.[* [[신도우 히카루]]는 [[와야 요시타카]]의 주선으로 모리시타 시게오의 연구회에 다니며 모리시타 九단의 지도를 받았지만, 정식 문하생은 아니다. 굳이 따지다면 외부 객원 멤버 포지션.] 슬하에 아들과 딸 하나가 있다. 타이틀전 경험이 다수 있는 베테랑으로 토우야 명인과는 동세대 기사다. 자신의 제자들에게 토우야 명인의 제자들보다 좋은 성적을 내라고 툭하면 잔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토우야 명인에게 일방적인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는 듯.[* 히카루가 와야의 소개를 받아 연구회에 처음 나왔을 때 아키라를 반드시 꺾어주겠다는 패기를 보여주자 그 자세가 정말 마음에 든다며 흔쾌히 받아줬다.] 여기까지만 보면 단순히 제자들을 들들 볶는 깐깐한 성격의 아재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제자들을 엄청 아끼고 격려해주는 참스승이다. 프로 시험 편에서 와야가 부담감에 괴로워 하는 걸 눈치채곤, "너라면 시험 통과는 당연하다! 어서 내가 있는 세계로 올라와라!"며 격려를 해준 게 그 증거. 또한 와야가 데려온 히카루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곤 흔쾌히 자신의 연구회에 받아줬으며, 방황을 마치고 복귀한 히카루와 혼인보전 예선에서 대국했을 때 베테랑 기사의 관록을 보여주며 승리해 고단자들과의 대국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즈음부터 히카루가 부채를 들고 다니기 시작한 걸 "그냥 폼으로 그걸 가지고 다니는 건 아니겠고... 뭔가 결의를 표현하고 싶어서겠지."라며 정확히 간파하기도 했다. * '''시라카와 미치오'''(白川道夫) {{{-1 - 성우: [[파일:일본 국기.svg|width=20]] [[유사 코지]]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0]] [[현경수]](투니버스)}}} [[파일:shirakawa-hikaru-no-go-52712.jpg|width=200]] 프로 七단. 모리시타 시게오의 제자. 7월 3일생 / B형. 온화하고 예의 바른 성격으로 작중 초반 동네 바둑교실에 등록한 히카루에게 바둑의 기초를 가르쳐준 첫 번째 스승이다.[* 사이가 히카루에게 바둑을 가르친 건 중학교 바둑대회 이후로 약 1년 뒤 이야기.] 1년 후 히카루가 일본기원 원생시험에 합격하고 와야 요시타카의 주선으로 모리시타 시게오의 연구회에 들어왔을 때 재회, 그 놀라운 성장속도에 감탄했다. 이후에는 연구회에서 함께 공부하며 대국도 하는 중. * '''사에키 코지'''(冴木光二) {{{-1 - 성우: [[파일:일본 국기.svg|width=20]] 시미즈 토시타카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0]] [[정승욱]](투니버스)}}} [[파일:히카루의 바둑_사에키 코지.png|width=300]] 프로 四단. 모리시타 시게오의 제자로 와야 요시타카의 바로 위 사형(師兄)이다. 히카루와 와야와 죽이 잘 맞아서 함께 어울리곤 하며, 특히 히카루의 프로 데뷔전 날 먼저와서 기다렸다가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농담을 건네는 등 착하고 배려심 깊은 좋은 선배다. * '''시노다'''(篠田) {{{-1 - 성우: [[파일:일본 국기.svg|width=20]] [[반도 나오키]]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0]] [[온영삼]](투니버스)}}} [[파일:히카루의 바둑_시노다.png|width=200]] 입단 30년차의 베테랑 프로 기사로 일본기원 원생 사범을 맡고 있다. 매우 온화한 성격으로 프로가 되기 위해서 이래저래 고생 중인 원생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아까지 않는 모습이 자주 나오는데, 하필이면 대국을 빨리 끝내고 아키라의 신초단 시리즈 시합을 보러가고 싶어할 때 끼어들어 복기하며 강의를 해주는 바람에 히카루를 초조하게 만들기도 하는 등 사람은 좋은데 [[투 머치 토커]] 기질이 좀 있는 듯. 원생 시험 때 히카루가 바둑을 배운지 1년 밖에 안 되었는데 삼면기를 뒀다는 사실에 놀라며 합격시키거나, 이스미가 실력은 있는데 정신적으로 나약하다는 점을 간파하는 등, 재능을 알아보는 통찰력이 뛰어난 인물. 비중은 적지만 매우 좋은 스승이다. * '''아시와라 히로유키'''(芦原弘幸) {{{-1 - 성우: [[파일:일본 국기.svg|width=20]] [[코니시 카츠유키]]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0]] [[신용우]](투니버스)}}} [[파일:98744beb-4641-438e-a27e-5190c49372ad.png|width=300]] 프로 四단. 토우야 명인의 문하생 출신으로 [[토우야 아키라]]의 바로 위 사형(師兄)이다. 토우야 명인의 문하생들이 전체적으로 진중한 분위기가 강한 편인데, 아시와라는 밝고 명랑한 성격이라 분위기 메이커 노릇을 하는 편. 그래서인지 직속 후배인 아키라와 허물없이 지내는 친한 형 같은 포지션이며, 이런저런 기전 일정 때문에 바쁜 아키라가 어느 행사에서 접대바둑을 두며 다면기 무승부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너의 재능을 이런데서 낭비하다니 안타깝다."라며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1부 막판에 사에키 코지와 명인전 1차 예선에서 대국하는 모습으로 오랜만에 재등장했다. 참고로 [[쿠라타 아츠시]]와 동갑이다. * '''고키소'''(御器曽) {{{-1 - 성우: [[파일:일본 국기.svg|width=20]] [[히로타 코세이]]}}} [[파일:85079_200908010053001235_3.jpg|width=200]] 프로 七단. 이 작품에 등장하는 프로기사들 중 단연 손꼽히는 [[인간 말종]]으로, 자신이 아는 바둑용품 판매업자와 짜고 '평범한 바둑판'을 '혼인보 슈사쿠가 생전에 직접 사용하고 [[서명]]까지 남긴 바둑판'으로 위조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600만엔)을 책정하고, 8만엔짜리 [[가문비나무]] 바둑판을 20만엔짜리 최고급 [[비자나무]] 바둑판이라고 속이는 등 명백한 사기행각을 벌였다.[* 심지어 고키소는 마치 30만엔짜리를, 할인해서 20만엔에 판매하는 것처럼 가격표를 조작하기까지 했다. ~~그냥 날강도 짓거리~~] 마침 심심풀이로 구경을 나온 히카루와 사이가 이걸 목격하게 되었고, 과거 슈사쿠의 몸에 깃들어 활동한 적이 있는 사이는 서명과 바둑판이 가짜라는 사실을 단번에 간파+슈사쿠의 이름을 이딴식으로 더럽히고 있다며 격노했다. 게다가 아마추어를 상대로 지도기를 빙자한 [[양민학살|양학]]을 하고 있었던 고키소 七단의 막장 행각에[* 쿠라타의 언급에 따르면 고키소 七단이 주식에 실패해 막대한 손해를 봤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는데, 아마도 여기서 쌓인 스트레스를 아무에게나 푼 것으로 보인다. 지도기를 받는 아마추어들의 실력을 감안해 적절히 상대해주고 복기 때 친절히 알려줘야 하는게 프로 기사로서 당연한 행동인 걸 생각하면 매우 잘못된 부분.] 다시 한번 격노한 사이는 히카루를 통해 고키소 七단과 대국을 벌이게 되었다. 처음부터 둔 게 아니라 양학당하고 있었던 아마추어가 포기한 대국을 대신 맡아서 계속 둔 것이었는데, 고키소 七단보다 실력이 더 뛰어난 프로가 아니고서는 역전시키기 어려운 상황이였지만 분노한 사이는 어렵지 않게 역전시켰고, 쪽팔린 나머지 바둑돌을 급하게 치우고 튀었다. 훗날 사이가 [[성불]]한 후 각성한 히카루와 공식전에서 대결했지만, 히카루에게도 무참히 패하고 말았다. [[파일:SugaGokiso2013.jpg|width=300]] 여담으로 일각에서는 ~~가르마를 반대로 한~~ [[스가 요시히데]]와 닮았다고 한다(...). * '''마시바 미츠루'''(真柴充) {{{-1 - 성우: [[파일:일본 국기.svg|width=20]] [[요시노 히로유키]]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0]] [[김광국(성우)|김광국]](투니버스)[* 이이지마 료와 중복.]}}} [[파일:Capture_μ.PNG.png|width=200]] 프로 二단. 토우야 아키라와 같은 기수로 프로에 입단했다. 시노다 원생 사범의 평가에 의하면 프로 시험 때는 실력은 있는데 운이 안따라주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리듬을 타고 훌쩍 벽을 뛰어넘어 합격하는 아이가 있는데, 마시바가 바로 그 리듬을 잘 탄 케이스라고 한다. 매우 찌질한 소인배로 원생 시절 알고 지냈던 와야와 이스미 앞에서 먼저 입단한 선배랍시고 잘난 척 하다가 젊은사자전 1회전에서 이스미에게 박살났다. 이게 어지간히도 분했는지 "이런 곳에서 이겨봤자 무슨 의미가 있냐. 프로 시험에서 떨어지면 말짱 꽝이지."라고 찌질거리다 와야에게 혼쭐이 나기도 했다. 이후 쿠와바라와 오가타의 혼인보전 제7국 기록 담당으로 짧게 재등장했고, 한참 뒤 입단에 성공한 와야&오치의 앞에 나타나 자신보다 실력이 좋은 애들이 치고 올라왔다며 투덜거렸고, 이스미가 프로에 입단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실력이 있으니 빨리 치고 올라갈 것이라는 그의 실력을 쿨하게 인정하는 정확한 평가를 내려 화내려던 와야가 할 말이 없어지게 만들기도 했다. * '''야시로 키요하루'''(社清春) {{{-1 - 성우: [[파일:일본 국기.svg|width=20]] [[이시즈카 타카시]]}}} || [[파일:yashiro_K01.jpg|width=200]]|| [[파일:yashiro_K00.jpg]]|| ||<:>원작||<:>애니메이션|| [[관서기원]] 소속 프로 初단. 바둑을 배운지 3년여만에 프로 입단에 성공했다. 집에서 프로 기사가 되는 것에 반대했기 때문에,[* 그나마 한국전 때 도쿄에 있었던 키요하루의 아버지가 잠시 아들의 대국을 관전했다. 이를 본 키요하루의 전담 사범이 키요하루가 크게 될 사람이라며 가족의 응원을 부탁하나. 키요하루의 아버지는 '''그렇다면 바둑계는 어떻습니까? 저는 누구보다도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고 자리를 떴다. 한 마디로 바둑 자체를 싫어하기보다는 앞으로 아들이 사회생활을 해나갈 바둑계 자체가 일본 내에서 점점 그 입지가 좁아지고 있기에 반대한 것. 그 때 사범은 '''아픈 곳을 찌르는구나.'''라면서 아쉬워 했는데, 현재 일본 바둑의 현황을 보면 키요하루의 아버지의 생각이 '''[[선견지명]]'''이 되어버렸다는 걸 알 수 있다.] 학업을 병행해야 돼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첫 등장 때 첫수를 천원에 두는 파격적인 바둑으로 혼다를 꺾었다. 북두배 대표 선발전에선 히카루에게 패하며 아깝게 탈락했지만,[* 흑을 쥔 키요하루가 '''첫수를 우상변 5의 오'''에 두면서 도발 → 히카루가 한술 더 떠서 '''천원에 착수''' → 역으로 도발을 받은 키요하루가 '''좌하변 5의 오'''에 두는 매우 파격적인 진행이 되었다. '5의 오'와 '천원'은 연구가 덜 되어 있는 수라 프로 대국에서 첫수를 5의 오나 천원에 두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옆에서 관전하던 프로기사들과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나중에 검토실에 합류한 쿠라타와 아키라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미 대표에 선발된 오치가 승부욕을 느끼고 키요하루에게 이긴 쪽이 대표 자리를 차지한다는 번외 대국을 요청, 다음날 오치를 꺾으며 북두배 대표로 선발되었다. 이후 북두배 준비를 위해 아키라의 집에 묵으며 공부하는 과정에서 히카루와 상당히 친해지게 되며, 그가 고영하에게 적개심을 불태우는 이유에 대해 묻는다. 여기까지만 해도 후반부 스토리에서 중요 캐릭터로 급부상할 것으로 보였지만 2패에 그쳤고,[* 중국전에서는 짜오스에게, 한국전에서는 [[홍수영]]에게 패배했다.] 이후 후일담을 끝으로 작품이 종료되는 바람에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는 못했다. 등장 및 활약한 기간은 상당히 짧지만, 잘생기면서도 거칠어 보이는 외모와 [[칸사이벤]] 속성 등 여러가지 요소가 맞물려 상당히 인기가 많은 캐릭터다. 관련 굿즈나 팬픽이 현재도 꾸준히 나오고 있을 정도. 캐릭터 모델은 한때 첫수 '천원'이나 '5의 오' 같은 공격적인 수를 실전에서 자주 사용했었던 [[야마시타 게이고]] 九단으로 추정되는데, 정작 히카루와의 대국에서는 다카오 신지 역할이었다.[* 히카루와의 해당 대국은 야미시타 게이고와 다카오 신지의 대국에서 가져온 것인데, 야마시타 게이고가 워낙 이상한 수를 사용했기에 다카오 신지가 이를 연구하고 먼저 첫 수 5의 5로 야마시타 게이고를 따라했다. 이에 야마시타 게이고 역시 두번 째 수 천원으로 응수했고, 이 때부터 둘의 신경전이 반상에서 시작된 것.] * '''카도와키 타츠히코'''(門脇龍彦) {{{-1 - 성우: [[파일:일본 국기.svg|width=20]] 타카세 아키미츠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0]] [[김정은(성우)|김정은]](투니버스)}}} [[파일:blog_import_5cac9ca1c930f.png|width=300]] 프로 시험 에피소드가 갓 시작될 즈음인 단행본 8권에서 첫 등장했다. 대학생 때 학생 명인, 학생 혼인보, 학생 십걸[* 셋 다 일본 프로기전에 착안한 학생리그로 보이는데 얘만 '십걸'인 이유는 불명이다. 십단의 오타일지도?] 대회를 모두 우승해 3관왕을 꿰찬 경력이 있는 엄청난 실력의 아마추어 고수로, 3년 동안 회사원 생활을 하면서 틈틈히 (아마도 경제적 자립을) 준비한 끝에 프로 시험 지원서를 내려고 했다. 이때 원생들의 실력을 좀 알아볼 생각으로 우연히 근처를 지나가던 히카루에게 말을 걸어 대국을 신청했는데, 자신이 둬도 별 의미 없는 바둑이라 생각한 히카루가 사이에게 두라고 하는 바람에 압도적인 차이로 깨졌다.[* 해가 지기 전에 집에 가고 싶으니 장고 하지 말라고 히카루가 조건을 붙혔다.] 이 패배를 계기로 어중간한 자세로 프로 시험에 임하는 건 안되겠다는 깨달음을 얻고 해당 년도 프로 시험 지원은 포기 후 1년 더 수련 하기로 한다.[* 훗날 카도와키는 히카루에게 "당시 내가 프로 시험을 포기한 이유는 너 같은 고수를 상대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파일:EVpTZFRU8AI3s5n.jpg|width=400]] 패배 후 히카루에게 "너 바둑 시작한지 몇 년이나 된 거지?"라고 물었는데, 히카루가 사이를 생각해 "1,000년"이라고 답했다. 사이에게 압살 당해서 별것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리 바둑을 뒀던 히카루도 카도와키의 실력에 대해서 '이 아저씨 엄청 세다'며 놀랐고,[* 특히 중반쯤에 대다수의 실력자들이 히카루에게 주목할 때, 와야와 오치 등이 "'그' 카도와키를 이긴 게 히카루라고?!"라는 식으로 카도와키를 훨씬 우위에 두는 상대평가를 한다.] 그가 프로 시험을 칠 거란 소문이 돌자 와야와 이스미도 긴장하는 등 엄청난 고수인 건 확실하다. 그 후 등장이 없다가 1년 뒤에 프로 시험에 응시해 최종 성적 26승 1패로 [[이스미 신이치로]]에게 패한 걸 빼곤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며 2위로 여유롭게 프로 입단에 성공했다. 2부에서는 이스미와 쿠와바라 혼인보의 신초단 시리즈가 열리는 날 일본 기원 회관에서 히카루와 다시 대국 했지만,[* 이 때는 사이가 성불한 뒤라 히카루 본인의 실력으로 뒀다.] 이번에도 패배했다. 대국 후 자신의 실력이 이전과 비교해 어떠냐고 물어보는 히카루에게 고심 끝에 [[후지와라노 사이|예전]]이 더 강했다고 솔직히 대답했는데, 오히려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웃는 히카루를 보며 황당해 했다. 이후의 언급을 보면 히카루와 입단 시기가 비슷한 저단자라는 공통점 때문에 소소하게 교류하며 친하게 지내는 듯. * '''노기'''(乃木) 프로 九단. 본편 시점으로부터 10년 전 명인전 3연패를 달성했었던 실력자이자 혼인보 리그에서도 활약 중인 정상급 기사 중 한명. [[토우야 코우요우]]의 은퇴로 공석이 된 [[기성전#s-2.2|기성(碁聖)전]] 타이틀을 놓고 [[오가타 세이지]]와 맞붙는 모습으로 첫 등장했는데, 최종전인 제5국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패배하여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했다. 2부에서는 천원 타이틀을 획득했다는 언급이 나오기도 했다. * '''무라카미'''(村上) 프로 二단. 젊은사자전에서 히카루와 1회전에서 맞붙었던 상대다. 히카루와 대국 종반에서 선수를 잡은 상태로 6집 반으로 승리했다. 토우야 아키라는 그러한 결과로 대국 중반까지 히카루가 무라카미와 대등했을거라 유추했다. 아키라는 무라카미에게 히카루가 상대로 어땠는지 물어보지만, 무라카미는 다음 상대임에도 이긴 자신보다도 패배한 원생을 궁금해하는 아키라에게 신경질을 내며, 다음 상대가 자신임을 상기시켜줬다. 물론 그런 신경전 끝에 맞붙은 2회전에서는 아키라에게 완패했다. 이후 한참의 시간이 지나 사이의 성불 때문에 방황하다 복귀한 히카루와 승단전에서 맞붙게 되었는데, '대국에 계속 불참 중인 녀석이 상대라 부전승으로 가볍게 三단이 되는거다.' 라며 좋아했다가 대국장에 히카루가 얼굴을 비추자 놀란다. 그리고 그간 엄청난 레벨업을 이룩한 히카루의 바둑 실력에 압도당해 변변한 힘도 못써보고 불계패를 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